다양한 지식 이야기/성경

(기도) (응답) 7번이나 기도한 갈멜산의 엘리야의 기도

낭만쭈니 2022. 3. 28.

안녕하세요. 오늘 포스팅은  기도와 응답에 대한 내용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기도하고 계시나요? 

 

제가 읽은 성경 구절은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기도하는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기도할때 어떤 마인드와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믿음과 연관이 되어 있는데요.  믿음에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는 아래 글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예수님 (믿음이 부족할때)( 요한복음 4장 43-54 )

안녕하세요. 오늘 포스팅은 자신의 믿음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믿음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저도 그 중 한 명이구요. 그런데 정작 큰 위기가 닥쳐

wind-life.tistory.com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열왕기상 19장 41절-46절)

 

당시 이스라엘 상황적 배경을 보면 이스라엘은 장기간 가뭄( 3년이 넘는)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가뭄의 고통이 엘리야의 기도로 인한 것이었다지만 여기서는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는 엘리야의 기도의 자세에 포커스를 집중하고자 합니다. 

 

먼저 위 열왕기상  19장 41절을 보면  엘리야가 아합에게 먹고 마시라 하면서  큰 비 소리가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상당히 특이한 장면이죠. 

 

오늘날로 예를 들면  대통령이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에게  나는 분명히 확실히 서울대 간다. 라고 말하는거랑 다름 없는 상황인데요.  또 다른 예를 들면   나는 분명 로또 1등 된다 라고 말하는것도 포함할 수 있겠죠?!

 

그런데 누가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고서는 감히 확언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기도에는 믿음이 따라야 한다는 점을 엿볼수 있지요.  그런데 여기는 포커스 부분이 아니라서 깊게 고민을 해보지 않은데다가 이 구절을 읽어볼때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그렇게 먼저 말을 했다는걸 생각도 못했네요;;;; 따라서  여기 부분은 생략하고 엘리야가 7번 기도한 부분에 포커스를 집중하겠습니다.   

 

위 구절에 엘리야가 일곱번 기도한 부분..."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라고 말한 부분에서 몇가지  관점이 서로 상이한 관점이 있습니다. 

 

A 관점 글에는 엘리야가 일곱 번 기도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의 죄와 잘못, 부족한 부분을 끊임 없이 고민하면서 회개하며 기도를 했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B 관점 글은  끈길기게 포기 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해라. 는  현재 진행형 동사의 의미의 기도구요.  단순하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해석이죠...

 

하지만 제 입장에서 B 관점의 글은  이상적이고 소수에 해당되는 기도의 관점으로 보고, 보다 쉽게 포기 하는 일반적인 인간적인 엘리야의 입장에서 고민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 두번 기도하고 쉽게 접는 교인들이 많으니깐요.) 또한 엘리야의 횟수를 거듭해가며 기도할때의 심리와 사고방식도 생각을 해보았어요. 

 

엘리야는  처음에 기도했을때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었고, 두 번째에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 하나님은 왜 내 기도를 안 들어주시나?' 하면서  기도에 확신이 없어지지요.  그러면서 '하나님은 내 기도를 안 들어주시구나. '하거나  또는 '언젠가 들어주시겠지' 하면서  간절함이 줄어지고  자신이 그때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 잊고 살게 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7번 기도에 대한 두 관점을 참고해서  이해를 해보면  위에 언급된 오늘날 쉽게 포기하는 우리들의 기도 자세와 기도에 대한 사고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할 수 있겠더라구요. 

 

그 이유는 우선 확실한 부분은 엘리야는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실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를 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다른 인물의 정반대 상황은  다윗이 범죄를 해서  하나님이 다윗과 밧세바의 아기를 죽이기(벌)로 하셨을때 다윗은 하나님이 벌을 내리기 전까지(자신의 아기가 죽기전까지) 계속 기도를 드렸지요.  하지만 자신의 아기가 죽고  해당 기도를 중단했습니다.  아기를 살릴려는 기도가 의미 없어졌으니깐요. 

 

위 이야기는 두 인물의 상황과 태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상황이 결정날때까지 기도를 했다는 것이죠.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기독교인들) 기도는 한 번, 두번만 하고 중단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 혹은 선택이 확정 날때까지 계속 기도하는 것이다라는 개념(사고)을 가져야하는거지요. 

 

그리고 또 다른 관점인 엘리야의 A 관점을 적용해서 이해해보면  첫 번째 기도 응답이 나타나지 않았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에도 기도 응답이 나타나지 않았죠?  당시에  헬리곱터나, 자동차가 없어서  산에 올라가서 바다를 보고 다시 내려오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을겁니다. 따라서 사환이 바다에 징조를 확인해보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기다리며  동시에 하나님의 비 응답을 기다릴 때 엘리야의 마음 속은 심란했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엘리야는 본인의 기도에 어디가 부족했는지 고민을 했을겁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이 기도를 바로 들어줬는데  이번에 갑자기 왜 기도를 바로 안 들어주시니  아합왕에게 호언장담한 자신의 입장을 봤을때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었겠지요? 따라서 마음이 힘들었을겁니다. 

 

따라서 자신의 기도에 부족한 점을 찾으면서  7 번이나  기도를 했을 가능성, 관점도 일리 있어 보여요.  그리고 7번까지 기도하면서  자기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행실과 태도에 잘못된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7번 기도할때까지 했을 가능성을 엿볼수 있습니다. 

 

이렇게  엘리야의 일곱번까지 다시 가라는  성경 구절에서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 기도에 대한 사고방식, 마인드를 갖춰야 하는지 이해할수가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오늘날 우리는 엘리야의 일곱번 기도하는 자세, 즉 

 

-기도는 한번만 하는 것이 아니다. 두번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응답이 나타날때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기도에 대한 관점, 사고 방식을 가진다. ' 기도는 한 두번만 하는게 아냐.  응답이 나타날때까지 계속 하는거야' 라고 생각하는것이죠.

-기도란 자신의 언행에 부족한 부분, 하나님께 반하는  생각과 마음, 언행을 했는지 반성과 회개하는 과정을 거친다. 

-기도는 우리의 요청(목적)과 그 응답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응답할때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의 개념, 태도(자세)를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이 부분을 글을 쓸때 생각이 나는대로 이렇게  적어봤는데요.  내용이 뒤죽박죽이 되었는지 걱정이 드네요.  나중에 계속 읽어보면서 여기 본문 글을 정리, 보완해가겠습니다.  그럼 오늘 포스팅은 마치겠습니다. 

댓글